우리는 모두 네덜란드 농부들

 

2019년에 이어 2022년 최근 두 달 동안 네덜란드 농부들은 '2030년까지 배출가스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네덜란드 정부의 환경 정책'에 반발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여왔다. '일부 지방에서는 95%까지 배출량 감축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이 계획은 축산업이 배출가스의 주범이라는 지목에 따라 가축의 30%를 감축시키고, 많은 농가들을 폐업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의 글로벌 어젠다 추진에 따라 낙농국 네덜란드는 절대 대립할 수 없는 환경과 농민 사이의 딜레마를 양산하고 있다.

네덜란드 농부들의 시위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국가의 고속도로를 차단하고, 건초 더미에 불을 붙이고, 정치인들의 집 주변에 거름을 뿌리는 등 시위가 격렬해졌다. 시위대 중 한 명이 트랙터로 폴리스 라인을 위반하려 시도하자 네덜란드 경찰이 실제로 실탄을 발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평소 한적하고 고요한 네덜란드 시골에서 전례 없던 맹렬한 시위가 벌어지며 전 세계 인구에게 충격을 선사하고 있지만, 사실 이 충격은 (2030 어젠다라는 이름으로) 지속 가능한 노예화를 위해 세계의 자유 인류와 기술 관료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거대한 글로벌 전투의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실수하지 말자. 당신이 누구이든, 어디에 살든, 무엇을 하든, 권력에 굶주린 엘리트들은 우리의 생계를 위협하기 위해 끊임없이 쫓아 올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모두 네덜란드 농부들과 다름없다.

영원히 노예로 묶어 두고자 날조해 낸 거짓말들이 더 이상 민중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도록. 변혁자들의 채찍질에 순종하기만 하는 무지몽매한 민중의 상태가 아님을 고규하기 위함으로, 우리도 목소리를 내어야만 한다.

저항의 목소리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을 기억하는가. 2018년,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주변 국가에 확산된 노란 조끼 운동(Le Mouvement des Gilets Jaunes)은 사람들이 노란 안전조끼를 입는 것이 특징이었다. 노란 안전조끼는 프랑스에서 차량 내 비치품으로 한국으로 치면 차량용 안전 삼각대에 해당된다.

그럼 이 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탄소세. 이 시위는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일어난 시위였다.

당시 프랑스 정부의 생태전환부는 가스·경유에 대한 '생태세'가 너무 낮다고 판단해 탄소세를 인상시켰고, 이것은 이미 기름값 상승으로 고통 받고 있던 일반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당초 이 노란 조끼는 유류세 인상에 항의하는 운전자, 특히 운수업자들을 상징했지만, 점차 마크롱 정부에 대한 전체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로 확산되어 일종의 전국적 포퓰리즘 운동으로 번지게 되었다.

유류세 증세에 대한 저항을 시작으로, 복지 감축 등에 영향을 받은 빈곤층과, 직접적인 개혁으로 일자리를 하루 아침에 잃게 생긴 공무원들, 부유세와 자본소득세 감세로 인해 부유층만 혜택을 보는 현실에 절망한 중산층까지 마크롱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에 합세하게 되며 전국 각지의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 나와 조끼를 입으며 반정부 시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물론, 이 시위대의 대부분은 지구 온난화 사기 그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후 변화 사기에서부터 탄소 우생학 의제, 반인류 엘리트주의자들의 맬서스 인구 감소 계획까지 탄소세를 뒷받침하는 일련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연결시키지 않았다. 단지 그들 자신의 주머니 사정에 대해 걱정했을 뿐이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이 요점일 것이다. 대중들이 '친환경 의제'라는 가면 뒤에 숨은 정책들이 노동자 계급 시민들의 삶과 생계에 대한 공격이라는 것을 볼 수 있기 시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투쟁의 본질을 이해하든 못하든 간에, 이 저항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대중과 신봉건 대군주 사이의 이 거대한 투쟁은 2019년 말에 정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플랜데믹의 찬란한 기만이 창궐하며 투쟁은 잠시 브레이크가 걸렸고 암묵적으로 잠정 휴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TV와 미디어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바이러스가 치명적이니 외출을 금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으라는 경고를 날리지 않는다. 일시적인 휴전은 끝났다.

그렇게 이 투쟁의 다음 궐기는 현재 네덜란드의 농부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다.

바이러스 격리에 이어 최근엔 탄소세와 녹색 열풍에 항의하여 거리로 뛰쳐나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정부의 폭압적 정책에 의해 집에 갇히고 있다.

물론 이 투쟁은 네덜란드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캐나다는 비슷한 탄소 감축 계획을 약속했고, 2030년까지 비료에서 나오는 아산화탄소 배출을 30%까지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우리는 캐나다 정부가 캐나다의 불가피한 농민 시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들이 트럭 운전사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상기해 보자.

그리고 덴마크, 벨기에, 독일도 이미 유사한 '탄소 감소 정책'을 고려하고 있으며, 농부들에게 농사를 짓지 않도록 돈을 지불하기 위한 영국과 마국 정부의 계획들도 그대로 차용해 이미 시행하고 있다.

글로벌 통제를 열망하는 자들이, 탄소세와 개인 농업에 대한 제한으로,의도적으로 세계 경제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민중들의 시위 역시 이 통제된 파괴의 과정에서 발발하게 될 완벽하게 예측 가능한 결과의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엘리트 계층은 노동자 계층을 농노 계급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는 전망에 감출 수 없는 설렘을 숨기려 조차 하지 않는다.

온타리오 자유당 후보 그랜빌 앤더슨은 최근 "휘발유 가격 상승은 사실상 희망찬 미래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ㅡ 급등한 연료 값을 감당할 수 없는 시민들은 합리적인 가격의 다른 교통 수단을 찾아야만 하니 이는 바로 전기차의 수요로 이어진다.

또한 WEF는 락다운을 통해 사람들의 일상을 제한함으로써 "도시 환경을 조용히 개선시키고 있다"고 선언했다. ㅡ 명백한 현실은 락다운은 근로자들을 겨냥한 일종의 무기였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곤란을 낳았으며, 빈곤과 사회적 고립 및 우울증 증가에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약물 남용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살로까지 몰아넣어.

다시 말하지만, 중산층과 근로빈곤층에 대한 이러한 공격이나 그들이 만들어내는 대중 분노의 반응은 의제를 설정한 자들의 무능이나 인식 부족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그들 계획의 일부이다.

[Absolute Zero]라는 것이 있다. 이는 "캠브리지, 옥스퍼드, 노팅엄, 배스 및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대학 간의 협력"이며 "배출 0로의 급속한 전환과 양립할 수 있는 영국의 산업 성장을 밝히고 자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발표한 UK FIRES의 보고서 제목이다. 그들의 계획은 "친환경" 의제라는 명목으로, 2050년까지 항공 여행, 화물 운송, 건설 그리고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의 생산적 활동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은 쓸데없는 위협이 아니다. 국제 문제의 사슬을 조율하는 우생학자들이 저 뜻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곧장 전투견들(이 의제를 이행하기 위해 UN 관료기구와 WEF에서 매수하고 돈을 지불한 사람들, 그리고 사실상 모든 나라의 정치적 실책자들)을 풀어낼 것이다.

그 의제는 (대자연의 지구을 지구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생산적인 경제를 폐쇄하고 그 과정에서 전 세계 인구를 감축시키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중들이 변혁자들의 경제적 공격에 맞서 싸울 것이라는 사실 역시 분명히 예측된 사실이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그들은 "국토안보국가"와 "생물안보국가"를 탄생시키며 이에 대한 방어책을 구축해 왔다.

따라서 이제 대중이 벌이는 어떤 시위도 "국내 테러리스트에 의한 반란"으로 간주되며 배척될 수 있고, 개인의 금융 거래 시스템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을 포함한 개인에 대한 모든 종류의 처벌을 정부가 정당화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압력이 증가하고 있다. 포위망이 설정되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투쟁이 시작되려고 한다.

그럼 다음은 어떻게 될까?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전란 중에 있다. 그리고 이는 압도적인 다수의 인구를 대상으로 그 인구를 통제하려 소수의 최상위 계층들이 계략하는 교묘한 술책이다.

그 전선은 항상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테크노크라시 통제 시스템 강화을 위해 사회 구성원들을 끌어들이는 무의식적 속임수들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후 변화와도 같은 글로벌리스트들의 핵심 거짓말을 맹신하며 2030 의제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 금융 시스템의 화물 열차가 탈선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근본적인 진실에 눈을 뜨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계를 위해 소리내야 하는 저항이다. 이것은 의식주부터 우리의 숨쉬는 삶 자체를 옥죄려 시도하는 통치자의 폭압과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삶을 자유로이 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저항이다. 이것은 경제를 폐쇄하고 우리를 신봉건 시대로 안내하려는 독재자들로부터 우리를 온전히 독립시키기 위한 저항이다.

문제를 참작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우리는 모두 함께 신뢰와 연대로 뭉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흩어진 채로 멸의 길을 걷는 총기잃은 눈빛의 농노가 될 것이니.

지배계급이 '사회'를 '다원화 아니 원자화'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상당한 자원을 투자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근본적 힘인 '유대'를 완전히 끊어내고 대중을 모래가루처럼 산산히 흩어지도록 하기 위해, 인류 간의 불신을 조장하고 서로을 서로의 적으로 몰아 붙이도록 하고, 계급, 인종, 성별, 종교, 정치 등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의식적 분리의 단층선에 주의를 집중하며 통치 전략을 기축했다. 지금의 사회적 심리를 보아하면 글로벌 통제자들이 분열 및 통치 전략에서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명백한 함의는 글로벌리스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인류 간의 유대라는 것이다. 글로벌 통제를 희망하는 자들은 소위 국가의 지도자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내뱉는 앵무새같은 헛소리들에 반대의 기치를 내세우며 함께 연대하는 일반 대중의 무리를 가장 두려워 한다. 그것이 주류 언론과 학계에서 그 기득권층이 현 시대의 "포퓰리즘"을 비난하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이유이다.

정치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내뱉는 모든 진부함은 그저 자신들의 정치적 의제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집결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상투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들이 저들의 특정 안건을 거부할 때, 정치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재빨리 버리고, 그것들을 "비열한 포퓰리즘"과 "폭도 통치"라고 재조명한다.

그렇다. 오랜 세월, 인류를 분열시키고 대중의 인식을 지배해 왔던 어리석고 비통한 인위적인 좌/우 대립과 기타 인식 가름의 쐐기들을 과감히 벗어던져야 할 때이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실존적 위협을 두고 "인류가 단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허황된 희망사항이 아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최근 포퓰리즘 우파와 포퓰리즘 좌파가 힘을 합쳐 COVID-19 여행 여권을 무효화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그 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서서히가 아니라 당장에 테크노크라시 통제 시스템의 손아귀에 갇히고 목에 올가미가 죄여지기 직전이다. 이 변혁의 스위치를 막아야만 한다. 2030 의제에 반대하는 대중 운동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들의 의제가 아직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든 미치지 않든 우리가 지금 집단적으로 일어서지 않으면 곧 들이닥칠 일임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것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은 네덜란드 농민들과 연대하여 봉기하고 있다. 독일 농민들은 네덜란드 농부들이 독일-네덜란드 국경을 봉쇄하는 것을 돕고 있다. 이탈리아 농민들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농부다!"라는 시위 구호를 받으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폴란드 농민들은 바르샤바에서 저항하고 있다. 심지어 캐나다인들도 자신들의 자유 집회에 "나는 네덜란드 농부들과 함께 한다"라는 팻말을 들고 그들의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리고 7월 15일, 네덜란드 농민들을 지지하는 세계적인 시위를 요구하는 새로운 영상도 나타났다. "The World is Going Dutch"라는 구호를 달고 있는 이 연상은 현재의 저항운동을 20세기의 비폭력 저항운동에 비유하며, 전 세계 사람들이 네덜란드의 농부들과 연대할 것을 촉구한다.

깨달음이 번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불공평한 일들이 곧 우리에게 닥치게 될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이 모듬이 글로벌 정치적 의제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은밀히 축조되어 왔던 불신과 경계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 많은 이들이 유대하고 일어설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제 우리는 모두 네덜란드 농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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